(연극)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혜완 독백
(공 지영 작)
(혜완,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진다. 너무 화가 나서 탁자 위에 있는 술병을 낚아 챈다. 병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혜완--- )
[혜완] (눈물이 흐른다) 영선이 너--- !
(영선을 밀면서) 저리 비켜, 다쳐!
[혜완] 비키란 말야! (그와 동시에 손에 든 병을 있는 힘껏 벽을 향해 내던진다. 쨍그랑하며 병 깨지는 소리) 영선아, 분명히 말하겠는데 너 오늘 당장 여기서 나가줘.
(탁자 위의 휴지를 뽑아 코를 풀고 눈물을 삼킨다)
다시 말할까? 나가! 나가서 온 세상 사람들한테 떠들어.
남자들이. 그 중에서도 박감독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그리고 니가 얼마나 가련한 희생양인지 얼마나 억울한지 소리 높여 알려!
비겁해. 넌 비겁해! 알겠니?
더 이상 어리광 피지마! 듣기도 싫어. 넌 교활했던 거야.
이 세상에서 여자 혼자 노력하는 것보다 남편그늘에서 뒷바라지나 하면서 그 덕에 자기를 높이는 게 훨씬 칭찬 받을 수 있고 빠르고 안전한 방법 이라는 걸 넌 알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넌 이제 와서 남편이 너에게 공로상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어. 이제 와서 보니까 성공한 남편 그늘에서 웃고 있는 아내 역이 니가 기대했던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던 거야. 그런 건 절대로 억울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야! 알겠니?--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이 세상 수많은 여자들이 아침마다 엄마한테 매달리는 애들을 떼어놓고 눈물 젓은 가슴으로 직장에 나가.
수많은 여자들이 사무실에 앉아서도 애 유치원 소풍에 못 따라간 걸 가슴아파한다고. 그 아픔을 아무한테도 이해 못 받으면서도 그래도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기를 쓰는 거야, 알겠니?
그래 착한 넌 희생양이고 그래서 억울하겠지만 난 순교자는 아냐.
그래서 난 억울하지 않아. 적어도 억울하진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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