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테네시 윌리암스 유리동물원 - 톰과 아만다의 장면연기 2인극
조명이 서서히 어두어지며 꺼진다. 스크린에 비친 자막 : 「내가 대륙 양화점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세요?」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기에 앞서 톰과 아만다의 거친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커튼 뒤에서 언쟁을 하고 있다. 그들 앞쪽에 로오라가 놀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서있다.
[톰] 빌어먹을! 도대체 난-
[아만다] (날카롭게) 닥치지 못 하겠니!
[톰] 어떡하라는 거죠!
[아만다] 말버릇! 못 돼 먹었어 !
[톰] 어이구!
[아만다] 내 앞에선 안 돼! 너 정신 나갔니?
[톰] 네, 그래요. 난 정신이 나갔어요!
[아만다] 넌 도대체 어떻게 된 아이냐, 허우대가 아깝다 아까워. 시레비 같으니라구!
[톰] 보세요! 난 빈 털터리 라구요. 난 가진게 아무것도 없다구요...
[아만다] 목소릴 낮추지 못하겠니!
[톰] 이 집안엔 내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구요!
[아만다] 큰 소리 치지 말라니까!
[톰] 어제만 해도 그렇죠. 어머닌 내 책들을 없애 버리셨죠! 왜 그런 거예요...
[아만다] 그래, 도서관에다 돌려줬다- 원, 이거야 소름이 끼쳐! 로렌스도 미쳐도 더럽게 미쳤지 그따위 역겨운 책을 쓰다니. (톰은 난폭하게 웃는다) 넌 그런데 솔깃하면 곪을대로 곪아, 볼장 다 보게 돼- (톰은 더욱 난폭하게 웃는다) 그런 지저분한 책들은 내 집에 들여 놓을 순 없어! 들여 놓을 수 없다구, 안돼지 안돼!
[톰] 내 집 이라구요? 흥! 집세는 누가 내는데, 집세 때문에 종살이를 하는 사람은 누구죠?
[아만다] (비명처럼) 아니, 너,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톰] 난 입에 재갈만 물고 있어야겠군요! 그저 귀만 활짝 열어 놓고 말예요.
[아만다] 내말을 들어봐..
[톰]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그는 커튼을 밀쳐 연다. 식당 방 지역에 안개처럼 붉은 빛이 자욱하다. 아만다는 머리에 금속으로 된 컬러를 차고 있으며 작은 몸매에 비해 너무 큰 화장복이 헐렁하다. 건달 윙필드씨가 남겨준 유품이다. 책상 옆에 중첩으로 달아 놓은 나무판이 달린 책상위에 타이프라이터와 원고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다. 아만다가 톰이 글쓰는 걸 방해해서 말시비가 시작된거 같다. 의자 하나가 마루 위에 넘어져 있다. 그들의 동작은 불빛에 비쳐 천장에 그림자로 비친다.
[아만다] 내 말을 더 들어봐, 넌.
[톰] 싫어요. 듣지 않겠어. 나가 버리겠다구요!
[아만다] 들어와서 내말을 들으라니까-
[톰] 나가겠어요. 나간다니까요!
[아만다] 어서 들어와, 얘기가 아직 안끝났어!
[톰] 나간다니까...
[로오라] (절망적으로) ...톰!
[아만다] 더 이상 무례하게 굴지 말고 내말을 들어! 정 그러면, 나도 더 못 참는다!
톰은 그녀에게 몰아간다.
[톰]나는 어떨 거라고 생각하세요? 참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겠죠. 그럴 거예요. 엄마는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 따위는 관심도 없으니까요. 어머니는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않겠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하고 어쩔 수 없이 하는 일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구요.
[아만다] 네가 떳떳치 못한 일을 해오고 있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서 그렇게 빗나가는 걸 잘 안다. 넌 매일 밤 영화구경 간다고 하지만 곧이 안들려. 세상에 저녁마다 영화관에 가는 사람이 어디 있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치고 네가 꾸며대는 것처럼 생쥐 풀 단지 드나들 듯 구경 가지 않는 다구! 자정까지 영화구경은 하지 않아. 새벽 두시까지 하는 영화가 어디 있어! 이거야 술에 취해 비틀거리질 않나 미친놈처럼 혼자 지껄이질 않나! 넌 고작 세 시간 밖에 못자고 일터로 나가지 않냐. 네가 직장에서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훤히 안다. 일이 적성에 안 맞아 우울해 하거나 흥분제나 마시겠지.
[톰] (거칠게) 네, 그래요. 난 일이 마음에 안 들어요!
[아만다] 글쎄, 어쩌자고 직장을 허술히 여기는 거냐? 왜 우리 식구의 밥줄을 끊어 놀려고 하는거냔 말이다. 네가 직장을 잃게 돼 봐라. 그땐 우린 입에 거미 줄 치게 돼-
[톰] 난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어머니는 내가 그 놈의 창고
에 환장한줄 아세요? 내가 그 양화점을 좋아하는 줄 아세요?
어머니는 내가 거기서 평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세요?
베니다판 과 형광등만이 달린 그 창고 속에서? 제 말 좀 들으세요.
난 아침마다 그 곳으로 출근하는 게 넌덜머리가 나요. 차라리 쇠망치로 내 골통을 박살내 주면 속이 후련하겠어요. 하지만 난 출근을 하죠. 매일 아침 어머니가 내 방에 와서 '일어나서 세수해라! 일어나서 세수해!' 소리칠 때마다 난 혼자 속으로 '죽은 사람이 얼마나 행복할까' 라고 말해요. 그렇지만 난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을 합니다.
한 달에 65달러를 받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모든 꿈을 포기하면서.
그런데도 어머닌 내가 나밖에 모르는 애 라구요? 저 좀 보세요.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난 벌써 아버지가 계신 곳에 가 있을 거예요.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잡아 타고 말예요. 이젠 절 붙잡지 마세요. (1막 3장)
[아만다] 어딜 간다는 거지?
[톰] 영화관에요!
[아만다] 거짓말 마!
톰은 짝달막한 아만다에 비해 엄청난 체구를 그녀 쪽으로 웅크린다. 그녀는 놀라 뒷걸음질 친다.
[톰] 좋아요, 난 아편굴로 가겠어요. 흉악한 범죄자들의 소굴이죠! 난 호간 갱단에 가입했어요. 난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예요. 바이올린 케이스안에 기관단총을 넣어 갖고 다니죠! 낮에는 순진하고 정직한 점원이지만 밤에는 암흑가의 제왕이라구요! 난 카지노에도 다녀요. 난 루울렛을 해서 큰돈을 따요! 난 한쪽 눈을 가리고 가짜 콧수염을 달고 때로는 회색 구렛나루도 붙이죠. 무시무시한 얘기를 하나 더 들려 드릴까요? 날 미워하는 놈들이 여길 폭파할 계획을 하고 있어요. 어느날이고 그놈들이 우릴 공중으로 날려 보낼테죠!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어요. 얼마나 좋아! 어머니도 기쁘실걸요. 빗자루를 타고 한없이 올라가 보시죠. 불루 마운틴까지. 열 일곱명이나 신사들이 찾아왔다면서요. 이 늙고 추한 마녀같으니---
((그는 일련의 난폭하고 서툰 동작을 한다. 코트를 집어들고 방문으로 달려가 난폭하게 잡아 연다. 모녀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를 지켜본다. 그는 코트를 입다가 한쪽 팔이 소매에 걸린다. 한동안 그는 코트에 묶인 꼴이된다. 그는 화가나서 투덜거리며 코트를 확 나꿔채서 방바닥에 던진다. 코트는 로오라의 유리동물 수집품이 있는 선반에 부딪친다.))
[로오라] (째지는 목소리로) 아! 내 유리동물원!
((그녀는 얼굴을 감싸며 돌아선다. 하지만 아만다는 [늙고 추한 마녀] 라는 말에 몹시 놀라고 멍청한 상태라서 이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도 거의 의식하지 못할 정도다. 그러다가 마침내 말을 되찾는다.))
[아만다] (무서운 목소리로) 잘못했다고 빌기전엔 네놈하고 두 번 다시 말을 않겠다! (나간다.)
(로오라는 얼굴을 돌린채 서있다. 톰은 한동안 멍청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선반으로 간다. 거북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는 유리조각을 줍는다. 로오라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안나오는 듯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장면이 서서히 어두워 지면서 음악 [유리 동물원] 이 슬며시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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