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혜완 경환 2인극(공지영작)
조명 전환 경환 등장.
[혜완] (경환 앞으로 가서 바닥에 앉으며) 나 잘 할께--- 파출부 비용 벌고 남은 건 적금 들 거야 애들이 꼭 하루 종일 엄마랑 붙어있어야 좋은 건 아니잖아. 중요한건 애정의 질이야. 또 내년쯤이면 현이 놀이방 도 보낼 수 있잖아.
[경환] (아무 대꾸 없이 신문을 소리 나게 확 접어 던지고 자리에서 휙 일어 선다)
[혜완] (피하려는 경환을 가로막으며) 당신 정말 그러지마. 이러면 내 마음이 너무 무겁잖아
[경환] (냉랭하게) 니 마음대로 다 결정해 놓고 이제 와서 왜 마음이 무거워?
[혜완] (사정조로) 나 일 하고 싶어. 애 낳고서 내가 집에만 있었던 건 당신이 좀 더 신중히 생각해보자고 그랬고, 나도 섣불리 결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그래서 기회를 보고 있었던 거잖아. 이젠 현이 걸음마도 하고,
[경환] (쏘아보며) 무슨 돈을 그렇게 벌고 싶니? 생활비 모자라? 어머니한테 돈 더 달라고 할까? (극도로 화난표정, 혜완 쪽으로 책을 집어던진다) 한심한 재벌들 자서전이나 쓰려고 애 버려두고 나가는 저의가 도대체 뭐야? 니 논리대로 하면 이 세상 가정부인들이 다 바보고 멍청이 겠구나.
[혜완] (미안해 하다가 경환의 극단적인 반응에 예민해져서) 그래? 그럼 그까짓 무식한 교수부인 장례식에 가서 사흘 밤이나 새는 니 저의는 뭐니? 대학원생이야, 교수비서야? 그뿐이니? 그 교수가 술 좋아한다고 날마다 술에 곤드레가 되서 돌아오는 건 뭐가 대단한 일이니?
[경환] 너 일하는거 자체를 말리는 거 아냐. 좋아, 다만 아기를 키워놓고 나가란 말야. 그땐 내 말리지 않을께.
[혜완] 그래, 아이 키워놓고 마흔쯤 되면 온 세상에서 날 채용해 주겠지. 아이 키우느라 수고했다고 칭찬해가면서 안 그래? 넌 지금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을 들먹이고 있는 거 알아? 비겁해--- 너야말로 대학원에 한번 말해보지 그래? '아이 키우고 한 십년 후쯤 다시 공부 하겠습니다' 하고 말이야.
[경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지금?
[혜완] 그래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걸 넌 지금 나한테 강요하고 있는 거야.
[경환] 분명히 말해두는데 니 가 엄마이길 또 여자이길 포기한다면 나도 이제 상응하는 대우를 해 주겠어--- 알겠니?
[혜완] 뭐 포기한다고?
[경환] 직장과 가정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란 말야.
[혜완] 직장과 가정 중에서 선택하라고? 내가 지금 딴 남자랑 바람이라도 났어? 왜 선택 을 해? 이건 이거 아니면 저거 하는 식의 상황 아니잖아. 둘 다 소중해. 당신만 이해해 준다면 난 얼마든지 둘 다 병행할 수 있다고!
[경환] 따지지 좀 마! 한번만 이라도 그냥 알았어 해봐. 제발 따지지 말고! 도대체 뭐가 그리 잘났니? (혜완, 질린 표정으로 뭔가 항변하려다가 말문이 막힌다 경환은 험악한 표정으로 혜완 을 쏘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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